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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영공주 디렉터스 뷰

june|준| 2008. 11. 30. 00:20




<잘 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이경미 감독님은 스스로를 산만한 사람이라고 일갈했지만 영화를 보고 감독과의 대화를 통해 내가 느낀 그녀는 몹시나 집요하고 섬세했다. 어떤 관객분이 말씀한대로 템포가 빠르고 정신없어 보이는 영화지만 사실 양미숙을 표현하기 위해 계산해야할 것들은 무척 많았을 것이다. 지나치게 희화화 되지 말 것, 드러나게 연민을 불러일으키지 말 것, 그러나 '감정이입'할 구석은 남겨둘 것. 음.... 그러니까, 얼마든지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는 이야기 속에 감독은 많은 잔가지를 숨겨놓은 셈이다. 그것을 느끼는 관객들을 감독님은 '후크가 걸린다' 라고 표현했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이 영화를 보고 '불'에 해당된 사람들, 그 후크에 걸리지 못한 사람들의 가장 큰 이유는 오히려 미쓰 홍당무에 있는 유머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공감하지 못하고 그녀를 대상화 할 수밖에 없는 희화화. 많은 사람들이 이미 텍스트를 내놓았을 것이다. 하지만 코미디라는 장르에 자꾸만 한정시키려는 시선은 좀 답답하다. 마치 유머를 끌고 가기 위해 이런 캐릭터들을 세우고 사건을 만들었냐는 듯한 뉘앙스가 들렸는데 내가 잘못들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미쓰 홍당무에 나오는 캐릭터 모두가 본말전도를 가지고 있어 그것이 유머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김혜리 기자님의 말을 잘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어쨌든 두 영화 모두 재미있게 봤다. '잘 돼가? 무엇이든' 은 단편이 갖고 있는 어쩔 수 없는 아쉬움 같은 건 있었지만 영화 속에 있는 감독님의 잔가지들이 마음에 들었다. 특히 마지막. 어떤 지지대? 같은 것에 기댄 채 울고 있는 지영과 그 지지대가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희진, 그 다음 컷이 바로 골목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토하고 그 등을 두드려주는 다른 아저씨의 모습. 내가 너 대신 울어주거나 대신 겪어주거나 대신 토해줄 수는 없어도 울면서 쓰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붙잡아주고 내용물이 잘 나오게 등을 두드려줄 수 있다는 그 장면이 참 마음에 들었다. '미쓰 홍당무' 에서는 미숙과 종희가 복도 계단에 앉아 손잡고 울고불고 하다가 미숙이 과거에 종철과 있었던 같잖은 일을 고백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곳에서 감정이입을 심하게 할뻔했다. 오히려, 왠지 관객들이 미숙에게 연민을 느꼈으면 하고 바라는 듯한 장면- 왕따 학생시절 담임선생님이 이름을 불러주었던 사건- 보다 더 그랬다. 영화를 보고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문득, '싸이보그지만 괜찮아' 후반부에서 영군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는 장면이 겹친다. 두개 모두 현재 이상한 성격을 가진 주인공이 이렇게 된 결정적 이유를 보여주는 중요한 씬이다. 영군일 보면서는 많이 울었는데 미숙씨를 보고는 눈물까지는 나오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 그녀가 영군보다 더 씩씩하고 웃기고 독하기 때문일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