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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준| 2009. 1. 19. 18:44
 



+ "샤머니즘은 자연과 영혼에 대한 숭배의식이다. 이를 바탕으로 점을 치고 병을 치료하기도 한다. 무당은 인간의 상식적인 세계와 초자연적인 미지의 세계를 이어주는 중개인으로서, 인간이 원하는 바를 성취해주기 위해 신명에게 간절히 기원하는 존재다."


+ 인간의 과학이 전 우주를 오염시킬 수 있을만큼 발전한다고 해도 모든 것들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특히 '영혼'과 관계되는 것이라면. '신명님의 뜻'을 따라 산 자와 죽은 자를 위해 몸사위를 하는 무당들은 교과서에 박제된 우리의 전통문화라는 보편적인 인식 혹은 미신이라는 폄하와 비난, 성경을 앞세운 자들의 마귀타령 등등에 묻히는 현재처럼,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선택된 인식 속에서만 살아 있을 것 같다.

우리와 같지만 다른 존재, 이들에게는 온전히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삶이란 없다. 원하든 원치 않든 평생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여야 하는 숙명 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게 너무 두렵고 또 원통해서 눈물을 흘리며 방울을 들고 뜀박질을 한다. 운명에 대한 증오와 체념은 인간 누구에게나 있겠지만 그들의 체념은 무릎이 꺾여서 멈추거나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들을 가슴으로 끌어안은 채 흔들림없이 오롯하게 서야한다는 걸 말한다. 발은 땅에 닿았으나 그들이 바라보아야 하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사바세계로 불리러 갈제, 나를 따라 오너라.
    멀고도 험하고도 거치른 길이로다.
    가다보면 또 넘어진다. 또 일어나라.
    가다보면 깊은 산이 있고, 깊은 물이 있다,
    옅은 물이 있다, 또 넘어진다.
    신도 싫고 인간도 싫다.
    혼자 있고 싶어진다.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다.
    그때 되도 신명에게 의지해라.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이 없다.
    신명에게 의지해라.
    신명에게 의지해서 가다보면 또 넘어진다.
    일곱 번 넘어져도 일어나라.
    오뚝이처럼 팔딱 일어나라.
    그럴 때 일수록 중심을 잡아라.
    한 눈 팔지 말고, 한 길을 봐라.
    그렇게 가다 보면
    분명히도 내가 설 곳이 있느리라.”






+ 영화를 보다가 문득 성령부흥회(?)에 갔던 어렸을 때 기억이 났다. 주로 통성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깊어질수록 곳곳에서 대성통곡이 들려온다. ('밀양'에서 나온 것처럼.) 마치 세기말이 가까워진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어떤 어른들은 영어는 절대 아니고 불어도 아니고 히브리어일지도 모르는 이상한 말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는데, 나는 엄마가 그것을 쏟아내는 걸 보았다. 나중에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지만 본인도 잘은 기억 못하는 것 같았다. 그건 성령이 임했을 때 쏟아지는 말이란다. 성령이 '사람 대신' 말을 쏟아낸다는 걸로 기억한다. 나중에 조금 더 커서 교회에서 배운것은, 정확하진 않지만 그 경지(...)에 오르기까지는 많은 은혜가 있어야한다 뭐 대략 그런 거였다. 그말을 쏟아낼 수 있는 사람은 뭔가 좀... 보통 사람보다는 조금 더 신앙심이 깊은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 같았다. 근데 지금의 내 눈으로는 굿하다가 다른 영이 들어와서 '내가 아닌' 다른 말을 쏟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