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
The Langoliers, 1995
june|준|
2008. 1. 18. 02:52

(원작을 보진 못했으나 영화와 원작이 똑같을 거라는 전제 혹은 게으름이 주는 예감하에 씀)
영화를 보는 도중 찐이 생각났다. 그녀가 언젠가 나에게 자기가 느끼는 시간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 전부는 기억 나지 않지만 "그래, 지금도 지나갔어. 너는 그 때의 네가 아니야. 또 지나간다, 넌 또 다른 너고." 이런 말. 나는 어리둥절하면서도 좀 신선한 충격을 받았었다. 시간과 시간 사이에 어떤 그 공간을 얘기하는 것 같아서. 1초와 1초 사이에 존재하는 틈. 나는 분명 여기 있고 시간은 나를 관통한다. 하지만 1초 전과 1초 후의 나는 다르다. 이미지로 설명하자면 29초를 가리키는 시계바늘이 30초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 틈은 열린다. 매 순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그 틈이 열렸다 닫히는 거다. (찐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같은 걸 말했는지는 조금 자신 없지만 비슷할 거란 생각.)
다만 여기서는 더 큰 개념이다. 과거-현재-미래. 비행기가 오로라를 관통할 때 잠들었던 자들은 저 틈으로 빨려 들어가 과거로 돌아간다. '현재'에 존재하는 것들이 이미 지나친, 그래서 냄새도 없고 메아리도 없고 맛도 느낄 수 없는 불길한 곳. 이곳은 (그러니까 스티븐 킹이 생각하는 바로는) 파괴되어야 하고 파괴될 것이다. 과거가 존재해야 현재가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가 사라져야 현재가 존재할 수 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는 걸 생각한다면 말이지. 이때껏 '현재' 라는 것은 포토샵 작품의 레이어들처럼 겹겹이 쌓여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녀자는 별로 공감할 수 없지만요.
우리 부모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선생님이 혀를 찰 정도로 건망증이 몹시 심한 나는 스스로 위로할 겸 이따금씩 과거의 기억이 (그게 불과 1분 전의 기억이든 1시간 전의 기억이든) 비스킷같이 연약해져 미처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부서져 사라진거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그러니까 건망증 심한 게 내 탓 아니라는 얘기^0^ 앞 문단과 주장이 좀 다르게 들릴 수도 있지만 쨌든 여전히 과거는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고 현재에 있는 인간은 그걸 다만 쉽게 '잊곤 한다' 는 말^^;;) 과거가 잊혀지든 부서지든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갖고 계신 것 같지만 스티븐 킹은 역시 스티븐 킹 답게 몹시나 과격한 모습으로 사라지는 과거의 모습을 묘사하신다. 물론 내가 생각한 건 '기억'의 문제라 좀 다르게 말할 수 있겠으나 어쨌든 기억도 시간에 관련된 것이니까. <-
시간의 흐름을 따르지 못하는 모든 것, 혹은 시간의 흐름뒤에 남겨진 모든 걸 잡아먹는 사신은 바로 랭고리얼.
'자기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게으른 놈에게는 무슨 일이 생기지?'
'랭고리얼들이 잡아가나요?'
'잡아가는 정도가 아니야. 잡아가서 먹어버리지! 그들은 게으른 놈들을 무시무시한 이빨로 찢어버린다!'
(잠 안자면 망태할아버지가 잡아간다는 우리나라 옛날 얘기보다 춈 더 디테일하다, 이쪽은-_ -)
이런 주장에 따르면 장님아이가 '그 분 (튜나의 아버지)도 게을러서 랭고리얼들이 잡아갔나요?' 라고 했을 때 튜나가 '그래' 라고 대답한 것도 충분히 납득이 간다. 가끔 나타나는 아버지의 환영이 왠지 겉보기엔 제명에 잘 죽었을것 같은 건장한 노인이라는 걸 생각해 볼 때 <노인 = 몸이 늙어진다는 것은 굼떠진다는 이야기 = 시간을 쫓아갈 수 없음 = 랭고리얼의 밥 = 인간의 죽음>
헐, 좀 무섭네요.
약간 다른 방향으로.
여기서 가장 안습캐릭터인 튜나를 중심으로 생각해본다. 그는 어린시절 스파~르타 아버지에게서 주입받은 랭고리얼에 대한 공포를 그대로 안고 자란 남자다. 랭고리얼을 부른 것은 바로 그의 거대한 공포일지도. 눈물나게 애처로운 그의 공포/초조/불안은 주변이들을 압도한다. 가뜩이나 상황도 이런데, 이런 놈이 옆에 있으니 당연히 비호감일 수밖에.-_ - 랭고리얼은 흉학하게 생긴만큼이나 공포의 냄새도 잘 맡는지 옆에 멀쩡히 비행기랑 사람들이 있는데도 튜나만 쫓아갔다. 사실 이쪽으로 생각하는 것이 나에겐 좀 더 재밌다. 설명 안 되는 부분이 엄청 많아지긴 하지만^^; 여백 많은 게 재밌지 않나......이건 여백이라고 할 수 없나.....
처음엔 눈 먼 여자아이가 모두를 구하기 위해 튜나를 랭고리얼의 떡밥...으로 삼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우리에게 필요해요. 죽이지 말아요.' 라고 했고 결국 튜나덕에 랭고리얼의 주의를 돌렸으니까. -_ - 하지만 쵸큼 더 생각해보면 마지막에 튜나가 그토록 가고싶어 했던 보스턴의 회의장 환영을 보여주고 튜나가 평생동안 말하고 싶어했던 것들을 토해내게 했으니 다른 누구보다 튜나를 구제해주고 싶어했던 건 그녀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튜나는 끝까지 '나는 패배자야' 라는 공포를 이기지 못했다. 아이가 어디까지 예측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에게 필요해요, 라고 말한 걸 보면 튜나가 결국은 지고 말거라는 걸 알았을지도.

사라지는 과거.
(영화가 1995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할 것. ㅋㅋㅋ)
(영화가 1995년에 만들어진 것임을 감안할 것. ㅋㅋㅋ)

문제의 오로라. 혹은 시간의 문. 혹은 조물주?
너무나도 아름다워, 모두를 위해 잠들지 않은 닉은 감탄사를 내뱉고 사라졌다.
성경에서도 신을 만난 자는 최소한 눈이 멀었었다.
자칫 ㅂㅌ로 몰릴까 걱정되지만 한 마디 덧붙이자면,
왜 저것은 저런 형상을 하고 있을까?
시간 = 어머니
닉도 말했다. "모든 것은 분명 저기서 태어났을 거야."

너 대체 정체가 뭥미...
장님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또 그 너머를 본다.
굉장히 오래 되고 진부한 설정이지만, 이상하게 납득이 돼.
장님들은 대부분 보통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 또 그 너머를 본다.
굉장히 오래 되고 진부한 설정이지만, 이상하게 납득이 돼.
안습의 튜나. 브론슨 핀초트 분.
사실 지난 주에 본 다른 영화에서 워낙 어벙한 캐릭터로 나왔기에
영화 시작 후 얼마간은 심각해도 웃기기만 했다. ㅎ
정말 열연해주셨음 ;ㅂ ;
사실 지난 주에 본 다른 영화에서 워낙 어벙한 캐릭터로 나왔기에
영화 시작 후 얼마간은 심각해도 웃기기만 했다. ㅎ
정말 열연해주셨음 ;ㅂ ;
# 이 영화는 내가 중학생도 안 된 꼬꼬마일 때 티비에서 몇 번 본 거다. '미스트' 보자고 언니랑 쑥덕대다가 어찌저찌 아예 스티븐 킹 영화를 검색하게 됐고 언니가 이걸 발견했다. 스틸 컷을 보고 난 대번에 어렸을 적에 봤던 그 영화인 걸 알았는데, 그 땐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못알아 들었지만 분위기 자체가 너무너무너무 무서웠고 (하긴 난 뭐 터미네이터 시리즈도 무서워했으니;) 랭고리얼들의 모습과 소리와 행동이 어린 내가 감당하기엔 ㅋㅋ 참 강했었다. 지금 다시보니 좀 촌스럽지만 그래도 캐릭터 자체는 여전히 강력하다. 스틸컷을 보자마자 나같은 건망증 퀸이 영화 내용을 줄줄 생각해낼 수 있었다는 건 어릴적의 충격이 꽤나 컸다는 얘기?
# 아무리 95년 작임을 감안해도 카메라나 편집이 너무 지루해서; 상황히 급박히 돌아가는 와중에도 새끼손톱만큼의 시큰둥함을 느꼈는데 그래도 새끼손톱만큼인 걸 보면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가 킹왕짱 중요한듯. 21세기의 영상기술로 리메이크하면 진짜 재밌지 않을까 싶다...
# 시간도 늦었고 억지로라도 잘까 했다가 도저히 잠들지 못하겠어서 쓰는데, 그러고보니 진짜 간만에 영화얘기 쓰는 것 같다^0^...; 게을러 게을러.
# 취향을 떠나서 스티븐 킹 좀 짱인듯.
# 아무리 95년 작임을 감안해도 카메라나 편집이 너무 지루해서; 상황히 급박히 돌아가는 와중에도 새끼손톱만큼의 시큰둥함을 느꼈는데 그래도 새끼손톱만큼인 걸 보면 역시 영화는 시나리오가 킹왕짱 중요한듯. 21세기의 영상기술로 리메이크하면 진짜 재밌지 않을까 싶다...
# 시간도 늦었고 억지로라도 잘까 했다가 도저히 잠들지 못하겠어서 쓰는데, 그러고보니 진짜 간만에 영화얘기 쓰는 것 같다^0^...; 게을러 게을러.
# 취향을 떠나서 스티븐 킹 좀 짱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