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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denly, Last Winter
june|준|
2009. 9. 24. 19:09
EIDF 2008 뒤늦게 보기. ;
0. 로마에 살고 있는 동성커플 루카(왼쪽)과 구스타브(오른쪽). 루카는 영화기자이자 평론가, 구스타브는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겸 독립영화감독이다. 다큐멘터리는 이들이 사귄지 8년 째가 된 2007년에 만들어졌다. 영화를 찍기 전에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자세히 나오지 않는다. 가족에 대한 화면이 전반부에 잠깐 나오지만 두 사람의 성향에 대해 그 누구도 불쾌함을 표현하거나 그들을 핍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대단한 행운이 아닌가 싶다;) 장난꾸러기 어린 사촌들은 그들을 잘 따르고, 다른 가족들도 그들의 카메라에 웃으며 화답한다. 딱히 특별할 것 없이 조용하고 즐겁게 자신의 일상을 보내던 사람들을 다큐멘터리의 제목처럼 정말 갑작스럽게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는 것은 다름아닌 정부에서 발표한 디코(DICO)라는 법이다.
1. 2006년 4월, (이름만 들어도 토 쏠리는 그 이름) 베를루스코니가 낙선하고 중도 좌파인 프로디가 총리직에 서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겨울, 이탈리아 정부에서 동성커플에게 이성커플과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법 디코를 언론에 공개한다. 장관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동거인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률'이다. 권리와 의무의 주체는 두 명의 성인. 둘 다 남자일 수 있고 둘 다 여자일 수 있고 남자와 여자일 수 있고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와 성전환 수술을 한 외국인 여자일 수도 있고....그렇다. 한 사람이 아프면 병원이 허락하는 하에 다른 사람이 간호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집의 임대 계약을 지속할 권리도 갖게 되고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다. 죽은 동거자의 가족이 있다면 1/n로 알아서 배분.
2. 디코는 이탈리아 내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고귀한 바티칸이 가만히 있을리가. 주교들은 프로디 정부를 협박하고, 베를루스코니는 디코인들을 'B급 부부' 라 칭한다. (이 단어는 착하게도 어떤 시민이 학습하여 구스타브 앞에서 그대로 반복해준다.) 디코에 반대하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이 법률은 동성애자들의 동거를 합법화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적인 가족'에 대한 위협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스타브는 좀 더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한다. 왜 우리를 싫어하죠? 우리가 폐를 끼쳤나요? 왜 디코를 반대하시는거죠? 그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인터뷰를 시도한 시민들은 모두들 약속한듯 말한다. 디코는 나와 상관 없어, 하지만 동성애는 질병이야, 우리가 그들을 도와줘야 하지, 동성애라니 하느님이 싫어하셔,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따로 만드셨지,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나, 반자연적이야, 왜 너희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고 하니? 루카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소우주에서 살았던 거야." ..."난 요즘처럼 내가 비정상이라고 느낀 적이 없어. 내가 반자연적인 줄도 몰랐어. 난 당연히 내가 자연적인 줄 알았는데."
3. 사람들은 오해한다. 새로운 가족형태가 결국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자연적인 가족'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자연적인 가족들이 세워놓은 틀을 깨어버리고 법체계를 혼란스럽게 하며 국가를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라고. 그들에게 가족의 정의는 성경에 있다.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가족 형태는 옳지 않은 것을 뛰어넘어 벌레와도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 진다. 보기 싫으면 언제든지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 구스타브가 디코를 왜 반대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시민이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그 사람이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디코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고 보기 싫은 동성애자들이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우리를 위협할 거라고 권위자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몇 천년 동안 지속된 종교의 옷을 입은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바보로 만든다. 그리고 체제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된다. 사람들이 자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때 권력은 위협을 느낀다. 자연적인 가족의 필수 조건인 아이는 자연적인 가족 속에서 자라 자연적인 가족을 만들고 그 아이는 다시 자연적인 가족을, 또 그 아이는 자연적인 가족을..... 그들이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자연적인 가족들이 다수를 이루는 공동체가 문제가 없다는 판타지를 믿게하는 것이다. 혹은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고 덜 혼란스럽다는 착각을.
4. 디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모두 신성하니 바티칸에 이야기할 필요 없다." 다수를 표방하는 집단은 자기들이 이때껏 지켜왔던 신념이나 물질적인 어떤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두렵지만 소수의 집단은 단지 우리에게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를 달라고 말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어떤 잣대로 가르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지 않는가, 너희들이 병자이니 주사를 놓거나 머릿속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우리야말로 가족이다.
5. 끝까지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구스타브와는 달리 루카는 되게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외모는 구스타브보다 강하게 생겼는데. 어쨌든 둘 다 잘생기고 똑똑한 게이다. 그래서 더 주목받거나 흥행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방영되지 못했단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축구보면서도 느꼈지만 이탈리아도 참 여러모로 힘든 나라 같다. 한국만큼이나.
1. 2006년 4월, (이름만 들어도 토 쏠리는 그 이름) 베를루스코니가 낙선하고 중도 좌파인 프로디가 총리직에 서게 된다. 그리고 2007년 겨울, 이탈리아 정부에서 동성커플에게 이성커플과 같은 권리를 보장하는 법 디코를 언론에 공개한다. 장관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동거인들이 안정적인 삶을 살 권리와 의무에 대한 법률'이다. 권리와 의무의 주체는 두 명의 성인. 둘 다 남자일 수 있고 둘 다 여자일 수 있고 남자와 여자일 수 있고 성전환수술을 한 남자와 여자일 수도 있고 남자와 성전환 수술을 한 외국인 여자일 수도 있고....그렇다. 한 사람이 아프면 병원이 허락하는 하에 다른 사람이 간호할 수도 있고, 한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람이 집의 임대 계약을 지속할 권리도 갖게 되고 재산도 상속받을 수 있다. 죽은 동거자의 가족이 있다면 1/n로 알아서 배분.
2. 디코는 이탈리아 내에 엄청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고귀한 바티칸이 가만히 있을리가. 주교들은 프로디 정부를 협박하고, 베를루스코니는 디코인들을 'B급 부부' 라 칭한다. (이 단어는 착하게도 어떤 시민이 학습하여 구스타브 앞에서 그대로 반복해준다.) 디코에 반대하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은 이 법률은 동성애자들의 동거를 합법화 하는 것이며 이것은 '자연적인 가족'에 대한 위협이라고 입을 모은다. 구스타브는 좀 더 정확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한다. 왜 우리를 싫어하죠? 우리가 폐를 끼쳤나요? 왜 디코를 반대하시는거죠? 그가 카메라를 들고 거리에서 인터뷰를 시도한 시민들은 모두들 약속한듯 말한다. 디코는 나와 상관 없어, 하지만 동성애는 질병이야, 우리가 그들을 도와줘야 하지, 동성애라니 하느님이 싫어하셔,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따로 만드셨지,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나, 반자연적이야, 왜 너희는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려고 하니? 루카는 말한다. "우리는 우리만의 소우주에서 살았던 거야." ..."난 요즘처럼 내가 비정상이라고 느낀 적이 없어. 내가 반자연적인 줄도 몰랐어. 난 당연히 내가 자연적인 줄 알았는데."
3. 사람들은 오해한다. 새로운 가족형태가 결국 지금까지 유지되어 온 '자연적인 가족'을 위협하고, 더 나아가 자연적인 가족들이 세워놓은 틀을 깨어버리고 법체계를 혼란스럽게 하며 국가를 무너뜨릴 것이다. 우리의 공동체를 무너뜨릴 것이다, 라고. 그들에게 가족의 정의는 성경에 있다.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가족 형태는 옳지 않은 것을 뛰어넘어 벌레와도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 진다. 보기 싫으면 언제든지 치워버릴 수 있는 존재. 구스타브가 디코를 왜 반대하느냐고 물었을 때 한 시민이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단지 그 사람이 말을 잘 못해서가 아닐 것이다. 단순히 디코의 혜택을 받을 사람들이 내가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하기 싫고 보기 싫은 동성애자들이기 때문에, 혹은 그들이 우리를 위협할 거라고 권위자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몇 천년 동안 지속된 종교의 옷을 입은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바보로 만든다. 그리고 체제는 더욱 견고하게 유지된다. 사람들이 자손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을 때 권력은 위협을 느낀다. 자연적인 가족의 필수 조건인 아이는 자연적인 가족 속에서 자라 자연적인 가족을 만들고 그 아이는 다시 자연적인 가족을, 또 그 아이는 자연적인 가족을..... 그들이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자연적인 가족들이 다수를 이루는 공동체가 문제가 없다는 판타지를 믿게하는 것이다. 혹은 상대적으로 덜 폭력적이고 덜 혼란스럽다는 착각을.
4. 디코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은 모두 신성하니 바티칸에 이야기할 필요 없다." 다수를 표방하는 집단은 자기들이 이때껏 지켜왔던 신념이나 물질적인 어떤 것들을 잃어버릴까봐 두렵지만 소수의 집단은 단지 우리에게 자유롭게 사랑할 권리를 달라고 말할 뿐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란 어떤 잣대로 가르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에 있지 않는가, 너희들이 병자이니 주사를 놓거나 머릿속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우리야말로 가족이다.
5. 끝까지 집요하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구스타브와는 달리 루카는 되게 소심한 모습을 보인다. 외모는 구스타브보다 강하게 생겼는데. 어쨌든 둘 다 잘생기고 똑똑한 게이다. 그래서 더 주목받거나 흥행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방영되지 못했단다.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고. 축구보면서도 느꼈지만 이탈리아도 참 여러모로 힘든 나라 같다. 한국만큼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