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관리된" 사회 속에서 예술의 모습은 어떠해야 할까? 이 상황에서도 예술은 '아름다운 가상' 이어야 할까?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거짓일 게다. 그래서 예술은 '아름다운 가상'이기를 포기했다. "실제적인 파국 이후에, 그리고 다가오는 또 하나의 파국을 바라보며" 예술은 제 본질로 여겼던 특성을 잃어버렸다. 현대예술은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 불협화음으로 가득찬 현대음악은 훈련되지 않은 귀엔 오히려 고문이다. 온갖 추한 형상으로 가득 찬 초현실주의와 신즉물주의 작품은 역겨움을 불러일으킨다. 현대예술은 더이상 '가상'도 아니다. 대상성은 사정없이 파괴된다. 근대예술은 현실에 존재하는 대립과 갈등과 불화의 예술적 보충물이었다.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주체와 객체, 인간과 자연의 '화해'를 '아름다운 가상' 이라는 조화로운 허구로 보충하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오늘날 화해가 미학적으로 촉진된다면, 그것은 기만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래서 현대예술은 '아름다운 가상' 이기를 포기했다. 회화는 재현을, 음악은 조성을, 시는 의미를 포기하고, 연극은 부조리해졌다. 기만하지 않으려면 예술은 추해져야 한다. 말레비치의 [검은 사각형] 처럼 색깔이 사라진 세계에서 예술은 어두운 검은색이어야 한다. 현대예술은 이렇게 아름다움을 거부함으로써 겁탈당한 아름다움을 기린다. "현대의 예술작품들은 죽음의 원칙인 물화(物化)에 미메시스적으로 따른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예술은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실제로 그렇게 된 것처럼 추상적이다". 현대예술은 현대의 사회적 상태의 미메시스이다. 그러나 이는 '반영'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부정적 상태는 작품속에 내용으로 재현되는 게 아니라 추상적으로 변한 그 형식 속에 침전된다.
현대예술은 미적 주체의 의식적 가공으로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다. 비판적 리얼리즘처럼 현실의 부정적 측면을 재현해 보여주며 성토하지도 않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처럼 '전망'이라는 이름의 섣부른 '화해'의 상태를 그려 보여주지도 않는다. 카프카와 베케트의 작품은 사회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이들의 작품은 현실을 소리 높여 비난하지도, 언젠가 도래할 유토피아도 제시하지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사회의 그 모든 부정성을 보여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 끔찍한 삶의 조건에 계속 깨어 있게 해준다. 사회를 비판하기 위해 예술은 사회에 참여(engagement)해서는 안 된다. 사회와 거리를 두고 그것과 급진적으로 다른 타자로 머무는 것. 그것의 비동일자로서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예술이 사회를 비판하는 방식이다.
합리적으로 관리되는 비합리적인 사회. 그 속에서 예술은 저항을 계속해나간다. 원시인들은 무생물에까지 생명을 부여했으나 우리는 살아 있는 것까지 사물로 취급한다. 이렇게 모든 것을 물화(物化)하는 사회에서 예술은 사회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타자'로 남는다. 예술은 이렇게 합리적 파악 앞에서, 제 모습을 감추어버리는 자연의 존재를 미메시스한다. 하지만 사회는 이 반항아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관리되는 사회가 행사하는 동일시의 강제는 예술마저 끌어들이려 한다. 자본주의 문화산업은 제법 비판적인 작품이나 난해한 비합리적인 작품마저 휼륭하게 기능하는 체제 내에 포섭하여, 예술이 가진 비판적 잠재력을 무력화시키고, 가장 난해한 예술작품도 간단히 평균적 코드로 해석해 규준화한 후, 잘 포장된 향유의 대상으로 만들어 대중에게 제공해버린다.
이 동일화의 강제에 대항하여 예술은 끊임없이 자신을 사회와 구별하고 그것과의 차이를 주장한다. 소통을 거부하고 의미를 파괴하고 기대의 지평을 배반함으로써, 예술은 사회와 구별되는 자신의 타자성을 주장한다. 소위 '합리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보여주기 위해 예술은 스스로 부조리해진다. 소위 관리되는 사회의 '질서'라는 게 실은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보여주려고 작품에 혼돈을 도입한다. 사회가 행하는 동일화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예술은 끊임없이 자신을 '혁신' 해야 한다. 그 결과 예술은 끝없이 난해해지고 점점 더 해석적으로 변한다. 운명을 건 이 끊없는 탈주를 통해 예술은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남는다. 이 사회에서 "예술이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무는 것이다".
서정시가 떠난 자리에서 현대예술은 우리에게 고통을 주는 형식으로 사회의 부정적 상태를 증언한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사회에 비판을 가하는 방식이다. 예술적 저항의 근거는 예술이 사회에 토해놓은 시끄러운 발언이 아니라, 영원한 탈주를 통해 늘 사회에 불필요한 것으로, 사회의 영원한 '타자'로 머무는 예술의 존재 자체에 놓여 있다. 의미를 거부하고, 소통을 거부하고, 사회에 동화되기를 거부함으로써 예술은 모든 것을 동일화하는 비인간적인 사회 속에서 유일하게 인간적인 것으로 남는다. 예술은 이렇게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의 현존을 통해 사회를 비판한다". 예술은 존재 그 자체가 '반사회성'이며, 이 존재의 사실로써 사회를 비판한다. "새로운 예술은 화해의 가상을 단호히 거부함으로써 화해되지 않은 것 가운데서 화해를 견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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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배하고, 그렇다고 자기 안의 자연을 억압하지 않고, 비동일성 속에서 동일성(정체성)을 유지하는 주체. 섣부른 희망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고, 역사에 최종목적(텔로스)을 설정하지 않으나 저항을 포기하지도 않고, 불꽃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을 포착할 감수성을 지닌 현대적 의미의 예술적 주체.....
현대미학강의, 아도르노 '진리, 가상, 화해'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