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stern Promises

Play 2008. 12. 19. 11:15






 감독의 전작 <폭력의 역사>나 이 영화나 모두 '가족'이라는 개념을 띤 것들은 반드시 지켜야 할 질서, 올바른 것, 양지바른 곳에 놓여야 할 '선'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을 지키기 위해 주인공이 함께 가져가야 할 것은 선을 침범하는 외압을 막아낼 수 있는 힘, 폭력과 냉정함, 동물적인 잔인함이다. <폭력의 역사>에서 피로 얼룩진 과거를 철저히 숨기고 평범한 사람인 척하며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원했던 주인공 때문에 가족은 위험에 처하지만 결국 가족이라는 善을 유지시키는 것은 바로 주인공의 그 '피를 부르는 잔인함'이다. 과거에 대한 마지막 유언장을 쓰는 것처럼 자신의 적인 형(어쨌든 역시 가족이다)을 덤덤하게 처리한 주인공은 집으로 돌아와 숨겨왔던 자신의 모습을 혐오하는 가족 곁에 앉는다. 아내는 여전히 남편을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 같은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긴 하지만, 남편이 어떤 것을 선택 했으며 왜 그것을 선택해야 했는지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눈물을 흘린다. 남편역시 물기에 젖은 눈으로 아내를 바라본다. (<- 이건 아주 중요한 스포일러니까^^;)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도 <폭력의 역사>처럼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세묜과 키릴), 피보다 짙은 맹세로 엮인 가족(보리 v 자콘 파), 한 여성의 모성애와 자비로 인해 이루어질 수 있었던 가족(안나와 크리스틴)이 나온다. 그러나 세 번째의 가족은 다만 안나의 모성애 뿐만아니라 주인공 니콜라이의 마피아 보스에 대한 욕망, 그 욕망으로 인해 흩뿌려진 피를 방패삼아 안전해질 수 있었다. 마지막, 크리스틴을 안은 채 행복한 웃음을 짓는 안나, 밝고 화사한 햇빛이 들어오는 그 모녀의 집과 대비되는 어두컴컴한 레스토랑 안에 있는 니콜라이의 모습, 이 교차편집은 아이의 삶에 이 두 가지 상반된 세계가 죽을 때까지 공존할 것을 예고해주는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어두운 세계의 비극을, 누군가는 그래도 아이의 어머니를 바라보기도 하지만, 감독은 딱히 어느 쪽에도 손을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단지 가족을 화두로 얘기를 끝낼 수는 당연히 없다. 두 영화 모두 가족은 이유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다. <폭력의 역사>에서 무덤덤해서 더 잔인해보이는 톰의 복수가 다만 가족을 위한 것이 아니듯이, 니콜라이 역시 보스인 세묜을 파멸하고 크리스틴과 안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잔인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손톱이라도 깎아주는 것처럼 시체의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것, 마피아 보스들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부모를 스스로 모욕하는 것, 감옥 속에서 그려넣은 많은 문신, 그리고 (난 제대로 보지도 못했던) 터키탕 격투씬 등을 생각해본다면 그는 이미 폭력을 핏줄 안에 흡수하고 태어난 사람같다. 그렇다면 니콜라이와 톰을 악으로 지칭할 수 있을까? 선을 지키기 위한 폭력이란 것이 이미 모순을 안고 있듯이 그들은 단순히 선/악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잣대에서 멀리 물러나 있다. 이 영화 속 나름의 반전이 반전같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은 그때문이며 영화 자체가 실존을 말하는 이유 또한 그곳에 있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관계속에서 선 혹은 악이라는 뚜렷한 경계에서 벗어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 관계, 인간의 이중성을 가장 모순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소재가 가족이라면 절대적으로 동감한다. 소박하게는 안나의 가족인 엄마와 삼촌, 거역할 수 없는 절대권력인 아버지 세묜과 그 아래에서 강박적으로 호모란 단어를 혐오스럽게 내뱉는 아들 키릴, 키릴과 니콜라이의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형제애보다도 은밀한 동성애적 관계로 읽으면 더 재밌어진다. (물론 니콜라이를 향한 키릴의 일방적인 감정으로 보이긴 한다.)
 사족이지만 내게 <폭력의 역사>에서 부부의 그것과(스포일러 안에 있는) 비슷하게 느껴졌던 것은, <이스턴 프라미스>에서는 안나와 니콜라이의 짧은 입맞춤이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스크린을 보면서 왜 저기서 대체 키스를 하는 걸까, 오그라드는군,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영화가 완전히 비극일 수 없는 이유는 많겠으나 그 장면이 그중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여튼 이런 비루한 잡담 따위로는 발꿈치도 못닿을 놀라운 영화다. 내가 본 2008년 후반기 최고의 외국영화로 꼽힐 것 같다.

 
 






+. 기독교적 상징과 은유가 곳곳에 있다는 텍스트를 읽고 수긍했는데 잔인하게 강간 당하고 버림받은 10대 매춘부가 우리 시대의 동정녀라는 지칭은 본능적으로 구토가 일어난다.




+. 버릴 배우가 단 한명도 없다. 키릴역의 벵상 아즈씨도 세묜의 아민옹도..... 아름다운 나오미언니. 여신님. 나의 여신님은 왜이렇게 아름답죠? 언니처럼 나이들고 싶어요;ㅁ ; ;; 비고, 비고, 비고아저씨 아저씨!! 전 주변인들이 다 레골라스 좋아했을 때 혼자 아라곤을 좋아했어여 제가 보이나여 들리나여 굽신굽신...아저씨는 정말 캐릭터를 미메시스하는 사람인가봐요. 아저씨가 너무 압도적이라 보는 내내 큰 숨 한번 못 쉬었어요. 전 이제 로드만 기다리면 되는 겁니다. 아저씨가 외칠 '방수포!' 만을 기다릴께여ㅠㅠ









Posted by june|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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